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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 찰스 디킨스 본문

Book Review

두 도시 이야기 - 찰스 디킨스

Jay, Lee 2023. 6. 3. 00:05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요,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희망의 봄이면서 절망의 겨울과 같은 계절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p. 3)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슬픔 자체요, 절망이었다. 다수의 민중들은 소수의 귀족에게 억압받았다. 귀족들의 폭력적인 정치와 부당한 수탈은 계속되었다. 복수를 품은 분노가 드리우던 사회에서, 중세 시대의 모순을 뿌리뽑은 프랑스 혁명은 올바른 도시에서의 삶의 서막을 열었다. 그렇다면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따른 불평등이나 차별이 완전하게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을 아우르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커다란 소용돌이, 혹은 혁명 속 등장인물들의 운명과 삶은 우리의 또 다른 형태의 초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네트 박사는 에브레몽드 후작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지성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18년 간 감옥에 갇히는 기구한 운명을 겪게 된다. 그 후 그는 귀족의 조카인 찰스를 사위로 받아들이는, 용서하고 수용하는 삶을 선택한다. 찰스는 그의 충실한 하인을 구하기 위해 그의 사회적 지위와 그가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을 포기하고 파리로 돌아간다. 마네트 박사의 딸인 루시를 사랑했던 영국 남자 시드니는 비록 그녀가 다른 이와 혼인하였음에도 그녀의 남편을 구하는 등 그녀의 행복을 위해 삶을 바친다.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과 시련에 마주하고 있음에도, 타인을 향한 따뜻한 인간애와 헌신을 실현하며 그들만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에브레몽드 후작은 같은 귀족 출신이자 그의 조카인 찰스와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그는 세상 만물을 자신의 지위와 힘을 유지하고 그의 개인적 부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그의 소작농들을 착취하였으며 세금을 더 내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브레몽드 후작은 한 아이가 자신의 마차로 인해 죽임을 당했음에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찰스와는 대조적인 삶을 사는 귀족인 에브레몽드 후작의 삶을 매개로, 작가는 인간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해 질 수 있는지를 또렷이 보여주면서 모두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무엇이 찰스형인간과 에브레몽드 후작형 인간을 만들어 낸 것일까.

 

뒤파르주 부인은 뜨개질을 하며 과거에 느꼈던 분함을 적어 내려가며 복수를 꿈꾼다.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 중 다수는 죽음을 복수하는 방법은 또 다른 죽음뿐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앙갚음을 통해 모든 것을 뒤엎고자 한다. 자신이 고통 받았던 방법대로 에브레몽드 가문을 몰락시키려는 뒤파르주 부인이나, 혹은 폭동을 통해 귀족들의 머리를 베어내는 뒤파르주 씨와 그 무리를 생각해보자. 그들의 행동은, 자신으로 인한 아이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에브레몽드 후작의 행동과는 다른 것일까.

 

두 도시 이야기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복수를 위한 무분별함- 또 다른 피와 폭력과 희생을 요구하는 피비린내 나고 폭력적인 행위-는 우리가 어떤 모습의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의 연장선을 긋는다.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의 북서부를 장악하였으며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몰아 온 급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살인과 테러 행위, 노동자들의 대우, 급여, 근무 조건에서의 평등을 실현하는 데 실패한 사회 모습을 고발하는 기사들, 날마다 일간신문이나 뉴스를 장식하는 사회적 갈등이나 쟁점들을 떠올려보자. 비록 책 두 도시 이야기속 역사적인 장면들과는 꽤 다른 측면으로 보여지나, 다른 형상을 한 채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지위와 상황에 놓인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충돌, 사회적 불안과 갈등, 그리고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의 마르지 않는 원천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내면 안에 있다.

 

역사의 한 장 속 등장인물들의 삶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분명히 다르다. 포용적이며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마네트 박사, 찰스, 시드니와 같은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에브레몽드 후작과 같은 사람이 있으며, 뒤파르주 부부 혹은 복수의 칼날을 가는 혁명군과 같이 대갚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던시대에서 그들에게 주어졌던 것은, 대부분이 극과 극이었던 선택지였다. 다시 말해,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사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은 그들이 내린 선택이다. ‘두 도시 이야기속 등장인물들은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그들의 운명과 삶의 방식을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의지가 발현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물론 숭고한 희생 혹은 풍족한 삶과 같은 선택을 절대적인 선과 악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존하는 사회와 파멸하는 사회의 차이는 구성원들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으로서 우리에게는 매 순간 선택이 주어진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금지된 행동도 아니다. 그러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천은 의지를 가진 개개인의 힘에 있다. 인간은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바로 이 성격이 인간을 ‘결정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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